예레미야 26장 16-24절 “예레미야를 변호한 사람들” / 찬37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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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의 배경은 바벨론이 유다에게 적극적인 위협이 되기 이전의 것입니다. 여호야김이 다스리기 시작할 무렵(1절)(주전605년)입니다.
7장에서 성전 “뜰”에 서서 설교를 하였던 것처럼 26장도 성전 뜰에서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동일한 메시지는 아니지만, 유사한 점은 “유다 성읍에서 온 모든 백성”에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 선포는 “돌이키라” 회개로 하나님께 순종하라는 선언입니다.
예레미야 26:13 “그런즉 너희는 너희 길과 행위를 고치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선언하신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시리라”
예레미야 26:3 “그들이 듣고 혹시 각각 그 악한 길에서 돌아오리라 그리하면 내가 그들의 악행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려 하던 뜻을 돌이키리라”
이 메시지에 제사장들과 예언자(거짓예언자)들은 예레미야를 처벌해야 함을 요구하였습니다.
예레미야 26:11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고관들과 모든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 사람은 죽는 것이 합당하니 너희 귀로 들음 같이 이 성에 관하여 예언하였음이라”
예레미야는 스스로 합당한 하나님의 뜻을 선포함을 변론합니다.
예레미야 26:15 “너희는 분명히 알아라 너희가 나를 죽이면 반드시 무죄한 피를 너희 몸과 이 성과 이 성 주민에게 돌리는 것이니라 이는 여호와께서 진실로 나를 보내사 이 모든 말을 너희 귀에 말하게 하셨음이라”
이 상황중에 등장하는 것이 오히려 관원과 모든 백성은 그가 결백함으로 결론짓습니다. 오늘 본문 16절입니다.
예레미야 26:16 “고관들과 모든 백성이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이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말하였으니 죽일 만한 이유가 없느니라”
이 근거로 히스기야 왕 통치 시절 미가의 선례를 인용합니다.
미가의 메시지도 “예루살렘이 파괴될 것이고 성전이 쑥대밭이 될 것이다”라고 예언하였습니다.
미가 3:12 “이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시온은 갈아엎은 밭이 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이 되리라”
선지자 미가를 통한 메시지에 겸손히 회개하였던 히스기야 왕처럼 예레미야의 메시지에 반응하기로 결정합니다. 이와 같이 뜻을 돌이키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생명을 해롭게 하지 맙시다라고 장로들은 말합니다.
예레미야 26:19 “유다의 왕 히스기야와 모든 유다가 그를 죽였느냐 히스기야가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선언한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지 아니하셨느냐 우리가 이같이 하면 우리의 생명을 스스로 심히 해롭게 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동일하게 회개를 선포하였던 한 선지자 우리야는 죽음으로 향합니다. 애굽까지 좇아가서 여호야김은 악행을 행합니다.
예레미야 26:23 “그들이 우리야를 애굽에서 연행하여 여호야김 왕에게로 그를 데려오매 왕이 칼로 그를 죽이고 그의 시체를 평민의 묘지에 던지게 하니라”
또 다른 예언자인 우리야는 동일한 메시지를 선언하였지만, 여호야김 왕은 돌이키지 못하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에 있었던 예레미야 선지자의 상황과 우리야의 상황을 통하여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해야 할 지 쉽지 않습니다.
동일한 복음은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메시지 입니다.
미가 선지자를 통하여 회개의 복음을 받아 하나님을 향한 히스기야 왕의 모습처럼 우리도 오늘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여호야김처럼 아직도 돌이키지 못하는 연약한 부분이 있다면, 이 시간 온전히 십자가에 내려놓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이 새벽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할 때 그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 보호하시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야를 먼저 데려가심이 하나님의 뜻에 있지만, 가끔은 슬퍼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에게 임하였다는 믿음이라면,
우리야의 이 죽음이 이스라엘 백성 안에 큰 울림으로 또 다른 영혼을 향한 쓰임이라면…
저도 비단 예레미야의 길만은 선택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죽고 예수로 산다는 그 말씀처럼…
오늘 우리를 보내신 자리가 어떤 반응으로 이어질 지 모르지만,
24절의 아히감의 손을 통하여 도우시는 것처럼,,,
저와 여러분을 살리시는 그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가운데 가득하기를 축원합니다.
내가 오늘 살 수 있는 것이 내 능력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를 도우시고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고 그 주님과 함께 생명과 영광의 걸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